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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가 힘이다] ⑩ SW 생태계의 양날검 ‘특허’

dev@mndsystem 2014. 7. 29. 19:02

소프트웨어는 기존의 경제 시스템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을 실현하는 힘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선진국 문턱에서 제동이 걸린 우리 경제가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강화해야 할 요소로 꼽힌다. 미디어잇은  [SW의 힘, IT 코리아의 미래] 연중기획을 통해 SW 경쟁력의 중요성과 경쟁력 강화 방안을 제시한다. <편집자주>

 

[미디어잇 박상훈] IT 업계를 포함한 거의 모든 산업에서 특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핵심 특허로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한 사례는 수없이 많은데, 특히 지난 1990년대 초 호주연방과학원(CSIRO)이 모토롤라의 무선랜 기술을 개선해 취득한 와이파이 특허는 1997년 국제 표준으로 채택돼 현재 전 세계적으로 30억 대 이상의 PC와 모바일 기기에 사용되고 있다.

 

CSIRO가 이 특허로 델, HP,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으로부터 받아낸 금액만 현재까지 무려 10억 달러(한화로 약 1조 원). 버라이즌, AT&T, T모바일과 소송중이고 레노보, 소니, 에이서 등과도 추가로 소송을 벌일 예정이어서 단일 특허로는 사상 최대 수익을 거둘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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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등록 특허 중 SW 특허 비중 증가 추세 (표=LG경제연구원)

 

이러한 특허의 성공(?) 사례는 대부분 원천 기술 영역에 해당한다. 구현 방식이 비교적 명확하고 활용 영역도 뚜렷하다. 그렇다면 소스 코드로 구성된 소프트웨어(SW)는 어떨까? SW 특허 역시 SW 개발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기술 진화를 촉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까? SW 특허를 둘러싼 논쟁이 최근 국내 IT 업계의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다.

  

‘SW 특허 확대 여부’, 업계  핫이슈로 급부상

  

논란의 도화선은 특허청이 지난 달 ‘컴퓨터SW 관련 발명 심사기준’을 개정한 것이었다. 그동안 SW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기록한 기록매체 혹은 컴퓨터장치로만 특허 출원이 가능했는데, 개정안에서는 컴퓨터프로그램과 애플리케이션 등 하드웨어와 분리된 독립된 형태로도 특허를 신청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특허청은 SW 개발주체의 권리 보호를 강화하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관련 내용이 알려지자 오픈소스 진영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불특정 다수가 개발에 참여하는 오픈소스 특성상 특허 여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 무차별적인 특허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도 논란에 가세했다. 전정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별도 자료를 내고 “특허괴물과의 특허분쟁이나 지재권 분야 국제통상협상에서 발목을 잡히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SW 특허 옹호론자들 “더 강력한 SW 보호 수단 필요” 

 

뒤돌아보면 SW가 특허의 핵심으로 부상한 시기는 10년 남짓에 불과하다. 세계 SW 특허를 주도하는 미국의 경우, 새로 등록되는 특허 중 SW의 비중이 2000년대 초반까지 5% 수준에 그쳤지만, 2006년 10%를 돌파해 현재 15% 수준까지 높아졌다. 같은 기간 SW 관련 특허소송도 급증해 2007~2011년 사이 전체 특허 소송의 64%가 SW와 관련된 것이었다.

 

SW 특허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개발과 마케팅 등 엄청난 SW 개발 노력을 보호하려면 특허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일부 전문가들도 이에 동의한다. 일반적으로 SW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법은 특허와 저작권, 영업비밀로 분류해 공개하지 않는 방법 등이 있다. 그동안은 주로 저작권과 비공개 방식을 사용했다.

  

▲ SW 특허 관련 주요 소송 및 금액 (표=LG경제연구원)

  

그러나 시장 상황이 변했다. 전승우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특허 전쟁의 중심이 소프트웨어로, IT 기업만의 문제 아니다’ 보고서를 통해 “저작권은 SW 구현 아이디어와 표현방식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특정 기능과 기술에 대한 권리 보호 측면에서 한계가 있고, 리버스 엔지니어링 등 소스코드를 추출하는 툴이 정교해지면서 비공개 의미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 상황이 변하면서 특허 강화가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SW 특허는 그 자체가 꽤 짭잘한 '돈벌이'이기도 하다. 삼성과 애플의 소송 배상액은 10억 달러(한화로 약 1조 원)였고, 이올라스와 마이크로소프트의 브라우저 특허 소송 배상액은 5억 달러(한와로 약 5000억 원)였다. SW 특허 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 등장한 것도, 한번 소송에서 이기면 웬만한 대기업의 한해 순익을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SW 특허 반대 진영 “건전한 시장경쟁 해치고 혁신 방해” 

 

반면 반대 진영에서는 SW 특허 범위가 지나치게 확장되면서 새로운 제품 개발과 혁신을 저해하고 오히려 소송비용만 늘려 전체 산업발전을 막고 있다고 반박한다. SW 특허가 과다하게 허용돼 기술의 확산과 활용이 둔화되고 SW 개발 부담이 커지면서 전체 투자가 위축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내 한 조사결과를 보면 SW 특허가 증가하면서 SW 산업의 연구개발 투자가 오히려 줄었다는 통계가 있다.

  

SW 특허가 소수 독점 기업의 ‘꽃놀이패'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있다. 제품 개발보다는 기존 SW 특허를 활용해 경쟁자의 시장 진입을 막고 공정한 경쟁을 막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뉴질랜드 의회는 지난해 8월 SW 특허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SW정책연구소 관계자도 “유럽은 물론 미국도 최근에는 SW 특허 범위와 권한을 제한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 오픈소스 진영이 저작권 보호와 달리 SW 특허를 반대하는 이유 (표=오픈넷)

  

SW 특허에 가장 격렬히 반대하는 쪽은 오픈소스 진영이다. 오픈소스는 SW 소스코드를 완전하게 공개해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고 수정, 배포할 수 있어, 검증되지 않은 SW 특허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소스코드가 완전히 공개되기 때문에 특허 소송의 표적이 되기도 쉽다. 전 세계적으로 오픈소스 관련된 소송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오픈넷 관계자는 “특허는 저작권과 달리 불법 여부를 모르는 상태에서 특허 침해를 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범위 확대를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W 특허 확대를 둘러싼 또다른 논쟁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SW 특허 소송의 최대 수혜자들이 SW 특허를 가장 폭넓게 인정하는 미국 국적 기업이라는 점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대표적으로 2007년 리눅스 등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에 대해 235건의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리눅스와 안드로이드 등을 사용하는 전 세계 기업으로부터 매년 막대한 라이선스 수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SW 특허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소송의 빌미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일반적으로 SW 특허는 구체성이 모호하고 특허 청구 범위가 비교적 포괄적이어서 제품 제조나 판매 과정에서 정확히 발견하기 어렵고 발견해도 이를 피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 특허청의 특허 수수료 수입 현황 (표=나라지표 웹사이트)

  

특허청이 이러한 SW 특허의 기본 속성에 대해 충분히 알려 검토하지 않고 SW 특허 범위 확대를 추진하는 것에는 조직 논리가 반영됐다는 지적도 있다. 특허청은 다른 공공기관과 달리 독립채산제에 따라 예산의 거의 전부를 수수료 수입으로 충당한다. 특허 범위를 넓힐수록 특허 출원이 늘고 수수료 수입이 늘어나기 때문에 조직의 이해를 위해서라도 특허 범위를 확대하려고 하는 것이 통계청의 기본 정책 방향이라는 것이다.

  

SW 특허 확대 논의의 진정한 출발점

  

특허청은 논란이 확대되자 '컴퓨터프로그램' 대신 ‘하드웨어와 결합돼 특정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체에 저장된 컴퓨터프로그램’으로 문구를 바꿔 SW 단독으로는 특허를 신청할 수 없도록 심사기준을 다시 바꿨다. 지적재산권 제도를 총괄하는 문화부의 반발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오픈소스 진영은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며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SW 특허 범위 확대 여부는 국내 SW 생태계에 도움이 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존에도 기업들이 SW 특허를 신청할 수 있었지만 이 제도 대신 지적재산권을 더 선호했던 것은 두 제도가 기업 입장에서는 실제로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SW 특허를 출원하면 비용과 기간이 더 들었다.

  

따라서 정부가 오해를 살 수 있는 새로운 제도 시행에 행정력을 집중하는 대신 기존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 SW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은 더 설득력을 갖는다. 공공기관이 예산사업으로 개발한 SW를 관련 기관에 무상으로 배포하거나, IT 서비스 업체가 SW 개발업체의 소스코드를 분석해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것이다.

 

한 국산 SW 업체 대표는 “SW 권리자를 보호하는 측면에서 보면 프로젝트 결과물의 소유권을 개발업체에게 귀속시키고 IT서비스 업체가 영업상 취득한 SW 업체의 소스코드를 재사용하지 못하도록 비밀유지계약(NDA)을 법제화하는 등의 조치가 더 시급하다”며 “기존 관행을 그대로 둔 채 SW 특허 범위만 확대해 봐야 SW 기업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박상훈 기자 nanugi@it.co.kr